[E-8] 가이드라인은 나왔는데, 고시는 어디 있는가 — 연산량 계산법과 아직 없는 고시
다섯 개의 가이드라인이 연산량 계산식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지만, 정작 법이 위임한 고시는 8개월째 관보에 없다. 같은 여름 EU의 고위험 분류 가이드라인도 아직 초안이라는 사실이, 이 간극을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두 법이 함께 겪는 패턴으로 만든다.
Series E. 두 개의 AI법: 인공지능기본법 vs EU AI Act : E 시리즈 후속편 (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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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는 있는데, 도장이 없다
한 회사가 대형 AI 모델을 훈련하고 있다.
얼마나 큰 모델을 만들면 정부에 신고해야 하는지, 그 계산법까지 정부 문서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그 계산법을 정한 문서 자체가, 아직 “안(案)“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
레시피는 배포됐는데, 그 레시피를 인증할 도장은 아직 찍히지 않은 셈이다.
2026년 우리나라 AI 규제 현황이다.
다섯 개의 문서, 세 개의 빈자리
우리나라 인공지능기본법은 조문 자체는 촘촘하다.
투명성(제31조), 프론티어 AI 안전성(제32조), 고영향 AI 판단(제33조)과 사업자 책무(제34조), 영향평가(제35조) — 다섯 개 조항마다 정부가 낸 가이드라인이 하나씩 붙어 있다.1
가이드라인과 고시는 다른 물건이다.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풀어 설명하는 문서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
고시는 장관이 관보에 실어야 하는, 법이 위임한 의무다. 내지 않으면 법을 어긴 것이다.
법 제32조③은 연산량을 재는 구체적 방식을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고 못 박는다.2
그런데 2026년 9월 기준으로 법제처 행정규칙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뒤져도 “연산량”이나 “프론티어”가 들어간 고시는 한 건도 없다.3
그런데 계산법은 이미 나와 있다
고시가 없는데 그 고시가 정할 내용은 이미 상세히 문서화되어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가이드라인」은 누적 연산량을 재는 방법을 세 갈래로 제시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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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계산 — 파라미터 수와 토큰 수, 반복 횟수를 곱해 어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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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추정 — 파라미터와 토큰 수에 경험적 계수를 곱하는, 업계가 흔히 쓰는 근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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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 사용량 기반 — 실제로 돌린 컴퓨터의 성능과 시간을 곱해 거꾸로 재는 방법
임계값은 10의 26제곱 FLOPs(부동소수점 연산 횟수)다.
가이드라인은 친절하게도 예시까지 계산해 보여준다.
GPT-3는 약 3.15×10²³, Llama3 400B는 약 3.6×10²⁵ — 둘 다 이 기준에는 못 미친다.4
계산법은 이렇게 상세한데 그 계산법을 정한 고시는 여전히 초안 단계다.
가이드라인 원문조차 스스로 인정한다. 이 내용의 근거는 “고시 제정(안)“이라고.2
[필자 분석] 숫자가 법보다 먼저 오는 것은 흠이 아니라 패턴이다
EU AI Act 제6조는 처음부터 “고위험 AI를 어떻게 가려낼지” 판단 기준을 집행위원회 가이드라인에 맡겨 뒀다.
그 가이드라인은 원래 올해 2월 2일까지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의견을 더 반영하겠다며 계속 미뤄지다가 2026년 5월 19일에야 겨우 초안으로 나왔다.5
공개 의견수렴은 원래 6월 23일 마감이었는데 업계 요청으로 7월 23일까지 한 달 더 늘었다.
그리고 2026년 9월 지금도, 최종본은 나오지 않았다.5
우리나라와 EU, 서로 다른 대륙의 서로 다른 법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
법은 원칙과 숫자의 자리만 정하고,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나중으로 미룬다.
그런데 위임받은 기관은 정작 그 기준을 확정하기 전에 초안부터 세상에 내놓는다.
기술이 법보다 빨리 움직이니, 확정을 기다리다가는 아무 신호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은 그래서 이례적인 우회로가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앞에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현실적인 태도다.
다만 이 태도에는 대가가 따른다.
기업은 법적 구속력 없는 문서를 사실상의 규칙처럼 따라야 하고, 그 문서는 정부의 판단이 바뀌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기준으로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 — 그것이 오늘 두 대륙의 규제기관이 공유하는 자리다.
마무리: 초안이 실무를 이끄는 시대
법이 확정한 것은 원칙과 숫자가 놓일 자리뿐이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아직 초안이 대신 말하고 있다.
한줄 코멘트
한줄 코멘트. 가이드라인이 고시보다 먼저 오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법이 기술을 따라잡으려 할 때 두 대륙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순서다.
그 초안이 언제 도장을 받는지가, 다음에 확인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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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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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 가이드라인: 투명성 확보 가이드라인(제31조, 2026-01-26)·최첨단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가이드라인(제32조, 2026-05)·고영향 인공지능 판단 가이드라인(제33조③, NIA, 2026-04-29)·고영향 인공지능 사업자 책무 가이드라인(제34조, TTA, 2026-01-22)·인공지능 영향평가 가이드라인(제35조, KISDI, 2026-01-22). 상세는 한국AI기본법-EU-AI-Act-조문대응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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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기본법 제32조③(구체적 이행 방식·연산량 산정방식을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 — 의무 위임) + 시행령 제24조②. 「최첨단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가이드라인」(2026.5, 안) p.5가 스스로 근거로 인용한 문서는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의무의 이행방법 등에 관한 고시 제정(안)」(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 제정(안) 제2026-126호, 2026.2.)”이다. 상세는 프론티어-AI, 최첨단-인공지능-안전성-확보-가이드라인 참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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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7 Korean Law MCP로 법제처 행정규칙 데이터베이스를 “연산량”·“프론티어”·“생성형” 키워드로 재조회 — 전부 0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명의 인공지능 관련 고시는 인공지능제품서비스확인절차고시(제2026-50호, 2026-07-21) 1건뿐이다. 상세는 한국-AI기본법-법률21311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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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인공지능 안전성 확보 가이드라인」(2026.5, 안) 2-1절. 이론적·경험적·GPU 사용량 기반 3범주 6개 계산식과 임계치 10²⁶ FLOPs, GPT-3·Llama3 400B 계산 사례(p.17)를 원문에서 확인했다. GPT-3·Llama3 계산치의 출처는 익명 표기(“O社”)와 개인 추정(Andrej Karpathy)이라 1차 학술 출처 수준은 아니다 — [검토 필요].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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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원회는 AI Act Art.6(5)에 따른 고위험 AI 분류 가이드라인을 원래 2026-02-02까지 공표할 예정이었으나,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이유로 미뤄져 2026-05-19에야 초안으로 공표됐다. 공개 의견수렴은 원래 2026-06-23 마감이었으나 업계 요청으로 4주 연장돼 2026-07-23 마감됐다. 2026-09-17 기준 최종본은 채택되지 않았다 — [검토 필요, 계속 추적]. 상세는 EU-법령-관계도 참조.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