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7] 3천만원 vs 매출 7%, 그리고 일정의 역설 (feat. E 시리즈를 마치며)
Series E. 두 개의 AI법: 인공지능기본법 vs EU AI Act : E-7 (E 시리즈 최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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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처음으로: E-1 두 법은 다른 질문에서 태어났다
여섯 편의 채점표
E-1에서 두 법의 출생증명서를 나란히 놓았다. 그 뒤로 다섯 편이 쌓였다.
- E-2 — “고영향”과 “고위험”은 같은 단어가 아니었다. 하나는 계산 가능한 위험, 하나는 결과 중심의 영향이었다.
- E-3 — EU는 열 개를 금지했고 한국은 여전히 0개다. 금지는 진흥법의 문법에 원래 낯설다.
- E-4 — 같은 “밝히라”는 명령이 하나는 사람에게, 하나는 기계에게 향했다.
- E-5 — “자율”이라는 이름 뒤에서 조달이라는 지렛대가 조용히 규제의 일을 했다.
- E-6 — 자릿수 하나의 차이가 실은 10배였고,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섯 개의 발견이 가리키는 방향은 매번 같았다. 태어난 질문이 다르면, 같은 단어도 다른 무게를 가진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 다른 무게가, 법을 어겼을 때 실제로 얼마나 아픈가로 이어지는가.
숫자로 보는 마지막 격차
한국 AI 기본법 제43조와 시행령 별표 2는 과태료를 이렇게 정한다.[^1]
- 투명성 불이행(제31조제1항) — 1차 500만원, 2차 1,000만원, 3차 이상 1,500만원.
- 국내대리인 미지정(제36조제1항) — 2,000만원 정액.
- 시정명령 불이행(제40조제3항) — 1차 1,000만원, 2차 2,000만원, 3차 이상 3,000만원.
- 금지 AI 위반 — 해당 조항 자체가 없다(E-3).
- GPAI(프론티어) 의무 위반 — 과태료 규정 자체가 없다(E-6).
법률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무거운 처분이 3,000만원이다.
EU AI Act Art.99·101은 이렇다.[^2]
- 금지 AI 위반(Article 5) — €35,000,000 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7%, 더 큰 쪽.
- 고위험 AI 의무 위반(투명성 포함) — €15,000,000 또는 매출의 3%.
- GPAI 위반 — €15,000,000 또는 매출의 3%.
두 법 다 “위반 유형별로 등급을 나눈다”는 형식은 같다. 그런데 한쪽은 정액(3천만원까지)이고, 다른 쪽은 매출에 연동된다. 매출 연동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처분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다. 대기업 기준으로 환산하면 이 격차는 1,000배를 넘게 벌어진다.[^3]
시간표가 만드는 역설
숫자만큼 흥미로운 것이 시간표다. 두 법의 주요 적용일을 나란히 놓아 보자.[^4]
한국 EU (원안) EU (Omnibus VII 반영)
투명성 의무(제31조/Art.50) 2026.07.21 2026.08.02 변경 없음
고위험 AI(Annex III) 2026.07.21 2026.08.02 2027.12.02 (+16개월)
고위험 AI(Annex I,제품내장) 2026.07.21 2027.08.02 2028.08.02 (+12개월)
원안 기준으로는 한국(2026.7.21)과 EU(2026.8.2)가 2주 차이로 거의 나란히 출발한다. 그런데 Omnibus VII가 EU의 고위험 AI 적용을 16개월 늦추면서,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의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동안, EU의 고위험 AI 요건은 1년 4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국이 EU보다 먼저 시행한다. 언뜻 “한국이 더 빠르고 앞선 규제를 갖췄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정말 그런가.
[필자 분석] 먼저 도착한 것이 자랑은 아니다
C-5에서 우리는 “40년 후에도 작동할 규제인가”라는 기준으로 한국과 EU를 채점했고, 결론은 두께의 차이였다. EU 체계에는 조화표준·비례성 있는 모듈·실효적 제재·피해자 구제라는 40년의 두께가 쌓여 있었고, 한국은 그 두께를 이제 막 쌓기 시작한 상태였다.
E 시리즈 여섯 편은 그 진단을 AI법 대 AI법이라는 훨씬 좁은 창으로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표의 역설이 그 진단에 마지막 조각을 더한다.
EU가 고위험 AI 시행을 16개월 늦춘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매출 7%라는 처분을 실제로 집행하려면, 그 전에 조화표준을 마련하고, 통보기관을 지정하고, 시장감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무거운 제재를 걸려면, 그 제재를 정당하게 발동할 수 있는 두꺼운 기반부터 완성해야 한다. EU가 늦게 도착하는 것은 그 두께를 쌓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이 먼저 도착한 이유도 게을러서가 아니다. 다만 그 이유가 다르다. 정액 과태료 500만원에서 3,000만원은, 조화표준 체계나 대규모 시장감시 인프라 없이도 당장 집행할 수 있는 수준의 처분이다. 가벼운 제재는 무거운 기반을 요구하지 않는다. 얇은 법은 준비할 것이 적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다.
그러니 “한국이 EU보다 먼저 시행한다”는 사실은 두 가지로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 부담이 EU보다 먼저 찾아온다는 실무적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 설계의 관점에서는, 먼저 도착한 것이 곧 더 앞선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먼저 시행되는 법이 반드시 더 준비된 법은 아니다. 때로는 준비할 것이 적은 법이 먼저 도착할 뿐이다.
마무리: 두 개의 AI법이 남긴 것
E-1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두 법은 서로 다른 질문에서 태어났다. 그 다른 질문은 분류 방식을 바꿨고(E-2), 금지의 유무를 바꿨고(E-3), 투명성의 수신자를 바꿨고(E-4), 자율의 실질을 바꿨고(E-5), 문턱의 위치를 바꿨고(E-6), 마지막으로 제재의 무게와 시행의 순서까지 바꿨다(E-7).
여섯 개의 차이가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다. 진흥에서 태어난 법과 안전에서 태어난 법은, 조문 하나하나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를 드러낸다.
한줄 코멘트. 3천만원과 매출 7%의 격차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의 문제다. 그리고 누가 먼저 도착했는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도착했을 때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다.
두 법 모두 아직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진흥의 두께 위에 규제의 두께를 얼마나 더할 것인가. EU는 16개월 뒤, 실제로 그 두꺼운 기반 위에서 매출 7%를 제대로 집행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질문의 답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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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처음으로: E-1 두 법은 다른 질문에서 태어났다
주석 : [^1]: 인공지능기본법 제43조 + 시행령 별표 2. 상세는 한국AI기본법-EU-AI-Act-조문대응 §9 참조. [^2]: EU AI Act Article 99(3)(4)(금지 AI·고위험 AI 등 위반 3단계)·Article 101(GPAI 위반). [^3]: 대기업 연매출 기준 환산 시 격차 규모는 기업별 매출에 따라 달라지므로 배수는 예시적 근사치다. 정확한 배수는 개별 기업 매출 공시 자료 확인이 필요하다. [^4]: 인공지능기본법 제31·34조 시행일(2026.7.21) / EU AI Act Article 113 원 적용일 / Digital Omnibus 반영 조정일. 상세는 한국AI기본법-EU-AI-Act-조문대응 §10, Digital-Omnibus-Omnibus-VII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