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1] KC와 CE를 동시에 받아야 하는가
— 두 마크의 이중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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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에서 확인한 두 체계의 차이가 실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한국↔EU 양방향 제품 이동의 현실.
인천공항 세관에서 묻는다.
“이 제품에 KC인증 있습니까?”
같은 제품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통과하려면 다시 묻는다.
“Does this product have CE marking?”
두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하려면, 같은 제품에 대해 두 가지 인증 절차를 따로따로 거쳐야 한다. 시험도 따로, 문서도 따로, 비용도 따로.
이것이 국제 무역에서 기업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한국→EU: CE만 있으면 된다
한국 기업이 유럽 시장에 제품을 팔 때, KC인증은 아무 의미가 없다.
EU는 KC인증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발급한 KC인증서를 가지고 독일 시장에서 CE 마킹을 면제받을 방법은 없다. CE 마킹 절차를 처음부터 EU 방식으로 밟아야 한다.
단계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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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EU 법령이 적용되는지 파악한다. 전기 제품이라면 저전압 지침(LVD)과 전자파 지침(EMC)이 적용된다. AI 고위험 제품이라면 AI Act도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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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법령의 필수 요구사항을 충족한다. 조화표준을 따르면 준수추정을 받는다(A-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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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수준에 따라 적합성 평가 모듈을 선택한다. 저위험이면 Module A(자기 선언)로 충분하다. 고위험이면 NB 개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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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서를 작성하고, EU 적합성 선언에 서명하고, CE 마크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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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내 수권대리인(Authorised Representative)을 지정한다. EU 외부 기업이 EU에 제품을 내보낼 때는 EU 내에 연락 창구가 있어야 한다(A-4-1 참조).
KC인증을 받는 데 든 비용과 시간은 CE 마킹에 전혀 이월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다.
비용 현실: 간단한 전기 제품의 EU CE 마킹(전자파 시험 포함) 비용은 제품 종류에 따라 500만~3000만원 수준이다. 복잡한 AI 고위험 제품에 NB 개입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1] 수출 중소기업에게는 작지 않은 장벽이다.
EU→한국: KC가 필요하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EU 기업이 한국 시장에 제품을 팔 때, CE 마킹은 한국 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전기 제품이라면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KC인증을 받아야 한다. CE 마킹이 있다고 해서 KC 시험을 면제받을 수 없다.
단, 예외가 있다. 국가공인 시험성적서의 상호 인정이 일부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2] KOLAS 인정기관이 발급한 시험 성적서를 EU 시험기관도 수용하고, 반대도 그러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험 결과”의 상호 인정이지, “인증서 자체”의 상호 인정이 아니다. 시험은 한 번만 해도 되는 경우가 생기지만, 인증 절차는 각국에서 따로 밟아야 한다.
MRA — 상호인정협정의 현실
“KC와 CE를 서로 인정하면 되지 않나?” 당연히 드는 질문이다.
이것이 상호인정협정(MRA, Mutual Recognition Agreement)이다. EU는 여러 나라와 MRA를 맺어, 상대국의 시험 결과를 인정하거나 일정 범위의 인증을 상호 수용한다. 미국(OSHA), 캐나다, 일본, 호주, 스위스 등과 MRA가 있다.[^3]
한국과 EU 사이에는?
2000년대부터 MRA 논의가 있었으나, 포괄적인 제품 MRA는 체결되지 않았다. 한-EU FTA(2011년 발효)에도 제품 안전 인증의 상호 인정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왜 어려운가.
MRA가 의미 있으려면, 두 체계의 “동등성(equivalence)”이 인정되어야 한다. 한국의 KC인증 체계와 EU의 CE 마킹 체계가 동등한 수준의 안전을 보증하는가? 이 질문에 양측이 합의하기 어렵다.
C-1에서 확인했듯, 두 체계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KC는 사전 허가이고, CE는 자기 선언이다. EU는 CE 마킹보다 “약한” 사전 허가 체계를 동등하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한국은 CE 마킹의 자기 선언 방식이 KC인증만큼 엄격하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철학이 달라서 동등성 비교가 쉽지 않다.
AI 제품: 이중 규제의 최전선
일반 전기 제품에서도 이중 인증 부담이 있었다. AI 제품에서는 이 부담이 구조적으로 더 복잡해진다.
시나리오를 보자. 한국의 AI 스타트업이 채용 면접 평가 AI를 만들어 EU 시장에 진출하려 한다.
[EU 측 규제]
채용 AI → Annex III 카테고리 4(고용·인사관리) → 고위험 AI
→ Art.9-15 8대 기술 요건 충족 필요
→ 적합성 평가 수행 (Module B + D 가능성)
→ NB 개입 불필요 (생체인식 AI가 아닌 경우 자체 평가 가능)
→ 기술문서 + EU DoC 작성 + CE 마킹
→ 수권대리인 지정 (Art.22)
→ 적용 시작: 2027-12-02 (Omnibus VII 기준)
[한국 측 규제]
채용 AI → 법 제2조제4호 '사목' 채용·대출심사 → 고영향 AI
→ 법 제34조 6대 사업자 책무 이행
→ 위험관리방안·설명방안·이용자보호·인간감독·문서보관 의무
→ 고영향 AI 확인 신청 (선택)
→ 적용 시작: 2026-07-21
두 규제를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 한국 법과 EU AI Act가 요구하는 내용이 일부 겹치지만, 각각 따로 이행해야 한다. 특히 EU가 요구하는 기술문서(Annex IV 10개 항목), 자동 로그(Art.12), 데이터 거버넌스(Art.10)는 한국법에 없는 추가 의무다.
즉, EU에 진출하려면 한국 법 이행 + EU AI Act 추가 이행이 필요하다. 한국 이행이 EU 이행을 대체하지 않는다.
[필자 분석] 이중 인증 부담의 본질
이중 인증 부담은 기업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보면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첫째, 중소기업의 진입 장벽. 대기업은 법무팀과 인증 전담 조직이 있어 두 체계를 병렬로 소화한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이중 인증 비용과 복잡성이 실질적인 진입 장벽이 된다. EU가 Omnibus VII에서 SME 기술문서 요건을 단순화한 이유도 여기 있다.[^4]
둘째, 한국 규제 체계의 국제 호환성 부재. 한국 AI 기본법이 EU AI Act와 얼마나 정합성을 갖추는지에 따라, 미래에 일종의 MRA 가능성이 생긴다. 예컨대 기술문서 요건, 리스크 평가 방법론,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EU와 유사하게 설계했다면, “동등성”을 주장하기 쉬워진다. 반대로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면, 한국 기업은 영원히 두 체계를 따로따로 이행해야 한다.
현재로서 한국 AI 기본법은 EU AI Act와 구조적으로 다르다(C-1 참조). 단기간에 MRA가 가능해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는 무엇인가.
하나는 AI 기본법 후속 법령에서 EU AI Act와의 기술적 정합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술문서, 데이터 거버넌스, 자동 로그 요건을 도입하면, EU 이행 준비를 한국 법 이행으로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한 것이 유럽에서도 통하게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분야별 한-EU 상호 인정 확대다. 자동차나 의료기기처럼 이미 국제 기준이 통일된 분야부터 시험 성적서 상호 인정을 확대하고, 점진적으로 AI로 넓혀가는 방식.
어느 경로든, 한국 기업이 두 가지 규제 체계의 교차점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쓰지 않으려면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 기업의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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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1]: EU CE 마킹 비용은 제품 종류·복잡성·시험 범위에 따라 크게 다름. 간단한 소비자 전자제품 기준 EMC+LVD 시험 포함 500만~2000만원 수준이 일반적으로 인용됨. 복잡한 의료기기·기계류 등은 NB 비용 포함 수억 원 가능. AI 고위험 시스템의 경우 확립된 기준 없음. [^2]: KOLAS(한국인정기구)은 ILAC(국제시험기관 인정협력기구) 및 IAF(국제인정포럼)의 상호인정약정(MLA) 서명 기관으로, KOLAS 인정 시험기관의 성적서는 많은 국가에서 기술적 수용 가능. 다만 이는 시험 성적서 인정이지 인증서 상호 인정이 아님. [^3]: EU MRA 현황: EU는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스위스 등과 다양한 수준의 MRA를 체결. 전기전자·통신기자재 등 분야별로 적용 범위가 다름. EU-한국 MRA는 2024년 기준 제품 인증 분야 포괄 협정 없음. [^4]: Digital Omnibus (Omnibus VII, COM(2025) 836, 2026.05.07 잠정 합의). SME 기술문서 단순화 조치. 연간 최소 €225M 절감 목표. 위키 [[Digital-Omnibus-Omnibus-VII]]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