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2]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 NB 뒤의 네 기관, 한 줄로 세울 수 없는 이유
Series A. EU 제품안전 기초: NLF를 해부한다 : A-3 보충편 (A-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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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이렇게 물었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경찰을 감시하는 것은 누구인가. 감사원을 감사하는 것은 누구인가. 권력을 맡은 자를 다시 누가 확인하는가. 이 질문은 낡지 않는다.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다시 태어난다.
EU 제품 인증 체계에도 같은 질문이 숨어 있다.
이 시리즈를 준비하며 그림을 하나 그렸다. Notified Body(NB, 통보기관)가 속한 전체 생태계 — 누가 누구를 지정하고,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 를 한 장의 도표로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초안 두 개가 서로 달랐다.
하나는 시장감시당국(MSA)을 지정·통보 당국(NA)과 같은 줄에 세웠다. 다른 하나는 MSA를 인정기관(AB)·통보기관(NB)과 같은 줄에 세웠다. 둘 다 그럴듯했다. 그리고 둘 다 서로 모순됐다.
그림을 고치기 전에, 먼저 이 네 기관이 정말 무엇인지부터 다시 물어야 했다.
네 기관, 두 개의 서로 다른 질문
EU 적합성평가 생태계에는 네 종류의 기관이 있다.
- NA (Notifying Authority, 지정·통보 당국) — 회원국 정부 기관. 어떤 기관을 NB로 지정할지 결정하고 EU에 통보한다.
- AB (Accreditation Body, 인정기관) — CAB(적합성평가기관)의 기술 역량을 심사해 인정서를 발급한다. 독일 DAkkS, 한국 [[KOLAS]]가 여기 속한다.
- NB (Notified Body, 통보기관) — 개별 제품의 설계·생산을 실제로 심사하는 민간(또는 반관반민) 기관.
- MSA (Market Surveillance Authority, 시장감시당국) — 이미 시장에 나온 제품을 사후 단속하는 정부 기관.
이 넷을 한 줄로 세우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줄이 완전히 달라진다.
“누가 국가 권한을 직접 행사하는가”로 물으면, NA와 MSA가 한편에 선다. 둘 다 이름 그대로 정부의 “당국(Authority)”이다. 반면 AB와 NB는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기술적 역할을 수행하되, 조직적으로는 정부와 분리된다.[^1]
“언제 개입하는가”로 물으면, 답이 뒤집힌다. NA·AB·NB는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 신뢰를 쌓는 기관이다. MSA는 제품이 이미 시장에 나온 뒤 감시하는 기관이다. 이 기준에서는 MSA 혼자 다른 편에 선다.
두 질문 모두 정당하다. 그리고 두 질문은 서로 다른 답을 낸다. 우리가 그린 두 장의 그림이 서로 달랐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 각자 다른 질문에 충실했을 뿐이다.
표로 정리하면
한 줄로는 안 되지만, 두 축으로는 정리된다.
| 시장 진입 전 (Pre-market) | 시장 유통 후 (Post-market) | |
|---|---|---|
| 국가 직접 권한 (Authority) | NA — NB 지정·통보 | MSA — 리콜·판매중지·과징금 |
| 위임받은 기술기관 (Body) | AB — CAB 인정 / NB — 제품 심사 | (해당 없음) |
MSA가 유독 혼자 남는 이유는 도표를 잘못 그려서가 아니다. MSA는 애초에 이 표의 다른 세 칸과 “같은 종류의 일”을 하지 않는다. 국가 권한을 직접 행사하면서, 동시에 시장에 이미 나온 제품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유일하다.
순서도로 정리하면
시간 순서로 펼치면 MSA가 왜 갈라져 나가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AB (인정 심사) ──▶ NA (지정·통보) ──▶ NANDO 등재 ──▶ NB 활동 개시
│
개별 제품 심사 · CE 마킹
│
▼
시장 유통
│
▼
MSA (사후 감시) ── 위반 시 회수·리콜·과징금
윗줄 셋(AB→NA→NB)은 “제품이 나오기 전에 신뢰를 만드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다. MSA는 그 흐름이 끝난 자리에서, 완전히 다른 시점에 다시 시작된다.
[필자 분석]
이 불일치를 “그림 실수”로 덮는 것은 쉽다. 그러나 원문을 확인하면, 이 이중 구조는 EU 규제 설계 자체에 새겨져 있다.
Regulation 765/2008 Article 4(6)은 인정기관(AB)의 책임과 업무를 “타 국가기관과 명확히 구분한다(shall be clearly distinguished from those of other national authorities)”고 명시한다.[^2] 법 조문이 스스로 AB를 “authority”의 반대편에 세운 것이다.
그리고 원래 같은 법(765/2008)에 있던 시장감시 조항은 2019년 완전히 삭제되어, 별도의 법(Regulation 2019/1020)으로 통째로 옮겨졌다.[^3] 인정·통보와 시장감시를 같은 법 안에 두지 않기로 EU가 직접 결정한 셈이다.
즉 하나의 도표가 이 넷을 하나의 위계로 그리는 순간, 둘 중 하나의 축은 반드시 지워진다. 이것은 그리는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규제가 원래 2차원이라는 사실을 1차원 그림에 욱여넣었을 때 생기는 필연적 손실이다.
AI Act는 이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GPAI(범용 AI)는 AI Office가 중앙에서 감독하고, 고위험 AI의 시장 유통은 회원국 MSA가 나눠 맡는다.[^4] 감시자는 하나가 아니라, 시점마다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EU 체계의 답은 이렇다 — 감시는 한 지점에 모여 있지 않다. 진입 전의 감시자(NA)와 유통 후의 감시자(MSA)는 서로를 감시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순간에, 국가라는 같은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다.
한줄 코멘트. NA와 MSA는 같은 층에 있지 않다. 같은 순간에 있지 않을 뿐인, 같은 종류의 권한이다. 도표 한 장으로 규제를 그리려는 시도는, 규제가 실은 2차원이라는 사실을 종종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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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1]: Regulation (EC) No 765/2008, Article 4(5)-(6). NAB는 “공적 권한 활동(public authority activity)”을 위임받아 수행하되, “타 국가기관과 명확히 구분”됨. 원문 확인: [[regulation-765-2008-ec]]. [^2]: Regulation (EC) No 765/2008, Article 4(6): “The responsibilities and tasks of the national accreditation body shall be clearly distinguished from those of other national authorities.” [[regulation-765-2008-ec]] 참조. [^3]: Regulation (EU) 2019/1020, Article 39: Regulation 765/2008 Article 15-29(옛 시장감시 프레임워크) 전체 삭제 — 시장감시 체계를 별도 법으로 완전 이관. [[regulation-2019-1020]]·[[regulation-765-2008-ec]] 참조. [^4]: Regulation (EU) 2024/1689 (AI Act), Chapter III Section 4(통보기관·NB) 및 Article 74-84(시장감시, Reg 2019/1020 Chapter IX 준용). GPAI는 AI Office 중앙 감독, 고위험 AI 시장 유통은 회원국 MSA 분담. [[regulation-2024-1689-ai-act]]·[[시장감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