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1] NB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Accreditation에서 NANDO까지
— 심판은 어디서 오는가
Series A. EU 제품안전 기초: NLF를 해부한다 | A-3 보충편 (A-3-1) 이전 글: [A-3] Notified Body는 심판인가, 코치인가 다음 글: [A-4] 제품이 팔린 뒤가 더 무섭다
Notified Body가 민간 시험소에서 EU 공인 인증기관으로 변신하는 과정 — Accreditation(인정), Notification(통보), NANDO(등재) — 을 추적한다.
축구 월드컵 심판은 어떻게 선발되는가.
누구나 호루라기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장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FIFA가 후보를 심사하고, 체력 테스트를 통과시키고, 실전 경험을 검증하고, 최종 명단에 올린다. 명단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무리 뛰어난 심판이라도 월드컵 심판이 아니다.
EU의 Notified Body(NB, 통보기관)도 마찬가지다.
기술력이 뛰어난 시험소는 유럽에 수천 개가 있다. 그러나 EU 법령에 의한 NB는 2026년 현재 약 2,000여 개다. 나머지는 왜 NB가 아닌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탄생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민간 시험소 하나가 EU 공인 NB로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1단계: Accreditation — 기술력의 증명
NB가 되고 싶은 기관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Accreditation(인정)이다.
인정이란, 각국의 국가인정기구(National Accreditation Body)가 “이 기관은 특정 적합성 평가 활동을 수행할 기술적 역량이 있다”고 공식 확인하는 행위다.¹
독일이라면 DAkkS, 프랑스라면 COFRAC, 한국이라면 KOLAS가 이 역할을 한다.
인정기구는 후보 기관을 EN ISO/IEC 17000 시리즈 표준에 따라 심사한다. 심사 내용은 구체적이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한가. 기술 인력의 전문성이 해당 제품과 적합성 평가 절차에 적합한가. 독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어 있는가. 기밀 유지 절차가 존재하는가. 배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가.²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인정(Accreditation)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 그러나 EU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다.
블루 가이드(2022)는 이렇게 쓴다. “Accreditation should be considered by national notifying authorities as the most favoured technical basis for the assessment of conformity assessment bodies.”³
인정 없이도 NB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경우 해당 국가가 직접 기술 역량을 증명하는 서류를 EU 집행위원회와 다른 회원국에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훨씬 무겁고, 이의 제기 기간도 2주가 아닌 2개월로 늘어난다.⁴
비유하자면, 인정은 대학 졸업장 같은 것이다. 졸업장 없이도 능력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졸업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빠르고 간단해진다.
2단계: Notification — 국가가 보증하고, EU에 통보한다
인정을 받았다고 바로 NB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는 Notification(통보)이다.
각 회원국에는 Notifying Authority(통보 당국)라는 정부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이 인정받은 시험소를 심사해, “이 기관을 우리나라의 NB로 지정한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EU 집행위원회와 다른 27개 회원국에 통보한다.⁵
여기서 핵심적인 설계 원리가 드러난다.
NB를 지정하는 것은 EU가 아니라 각 회원국이다. 그러나 그 NB의 인증서는 EU 전체에서 효력을 갖는다.
독일이 지정한 NB가 발급한 인증서를 프랑스가 거부할 수 없다. 이것이 단일 시장의 핵심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회원국이 NB를 지정할 때 책임이 무겁다. 블루 가이드는 “회원국이 자국 NB의 역량에 대해 다른 회원국과 EU 기관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다.⁶
통보 당국은 인정기구와 별개의 기관이어야 한다.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통보 당국은 적합성 평가 활동을 직접 수행하거나 컨설팅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⁷
통보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기관의 상세 정보, 수행할 적합성 평가 활동, 적용 모듈, 대상 제품군, 그리고 역량 증빙 자료. 인정 인증서가 있다면 함께 제출한다.
이 통보는 전자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시스템의 이름이 NANDO다.
3단계: NANDO — EU 전체가 공유하는 심판 명부
NANDO(New Approach Notified and Designated Organisations)는 EU 집행위원회가 개발·운영하는 전자 통보 시스템이자 공개 데이터베이스다.⁸
작동 방식은 이렇다.
회원국의 통보 당국이 NANDO 시스템에 NB 정보를 입력한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EU 집행위원회와 모든 회원국에 통보 이메일을 발송한다. 인정 기반 통보라면 2주, 비인정 기반이면 2개월의 이의 제기 기간이 주어진다. 이의가 없으면 통보가 확정되고, NANDO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이 순간, 해당 기관은 공식적으로 NB가 된다.
NANDO는 각 NB에 고유 식별번호(4자리)를 부여한다. 이 번호는 순차적으로 생성되며, NB가 철회되더라도 재사용되지 않는다. CE 마크 옆에 찍히는 4자리 숫자가 바로 이 NANDO 번호다.⁹
누구나 NANDO 웹사이트(ec.europa.eu/growth/tools-databases/nando)에 접속해, 특정 NB가 어떤 법령, 어떤 제품군, 어떤 모듈에 대해 지정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탄생 이후: 감시는 계속된다
NB가 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A-4에서 제품의 사후 관리를 다뤘듯이, NB 자체도 사후 감시를 받는다.
인정기구는 NB의 역량을 정기적으로 재심사한다. 인정 인증서의 유효기간이 있고, 갱신 심사를 통과해야 유지된다. NB가 더 이상 역량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인정이 철회된다. 인정이 철회되면 NB 지위도 함께 사라진다.¹⁰
그리고 인정기구 자체도 감시를 받는다. 유럽인정협력기구(EA, European co-operation for Accreditation)가 각국 인정기구를 동료 평가(Peer Evaluation)한다. 인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다른 나라의 인정기구들이 상호 검증하는 체계다.¹¹
[필자 분석] 신뢰의 사슬이 보여주는 EU 규제의 설계 철학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NB 탄생 과정의 전체 그림을 그려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기업 → NB가 검증한다. NB → 인정기구가 검증한다. 인정기구 → EA의 동료 평가가 검증한다. EA → Regulation 765/2008이라는 법이 권한을 부여한다.
어떤 주체도 스스로를 검증하지 않는다. 모든 검증자에게 상위 검증자가 있다. 이것이 A-3에서 언급한 “심판을 심판하는 체계”의 실체다.
이 설계에는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인정(Accreditation)은 비상업적, 비경쟁적 공적 활동으로 규정된다.¹² 1990년대에 인정이 상업화·경쟁화되면서 신뢰성이 떨어졌던 경험 때문이다. EU는 이를 법으로 막았다. 각 회원국에 인정기구는 하나만 존재하며, 인정기구끼리 경쟁하지 않는다.
한국의 KOLAS, 독일의 DAkkS는 시장에서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기관이 아니다.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이것은 A-3에서 다룬 “민간기관이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긴장”에 대한 EU의 구조적 해법이다. NB는 민간이지만, NB를 검증하는 인정기구는 공적이다. 민간의 효율성과 공적 감독의 엄격함을 분리 배치한 것이다.
마무리
심판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인정기구가 기술 역량을 검증하고, 통보 당국이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고, NANDO를 통해 EU 전체에 공개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기관은, 아무리 뛰어나도 EU 법 앞에서 NB가 아니다.
그리고 한 번 심판이 되었다고 영원히 심판인 것도 아니다. 역량이 유지되는지,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검증받는다.
신뢰는 한 번의 시험으로 획득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검증으로 유지된다.
→ 다음 글: [A-4] 제품이 팔린 뒤가 더 무섭다 ← 이전 글: [A-3] Notified Body는 심판인가, 코치인가
주석 : [^1]: Blue Guide 2022, Section 6.2. “Accreditation is the attestation by a national accreditation body that a conformity assessment body meets the requirements set by harmonised standards.” [^2]: Blue Guide 2022, Section 5.3.2.2. 역량 기준: 인력·장비 확보, 독립성·공정성, 기술적 역량, 비밀유지, 배상보험 등. [^3]: Blue Guide 2022, Section 5.3.2.3. Accreditation under Regulation (EC) No 765/2008. [^4]: Blue Guide 2022, Section 5.3.2.5. 인정 기반 통보는 2주, 비인정 기반 통보는 2개월의 이의 제기 기간. [^5]: Blue Guide 2022, Section 5.3.2. “Notification is the act of the notifying authority informing the Commission and the other Member States that a conformity assessment body has been designated.” [^6]: Blue Guide 2022, Section 5.3.2.1. “Member States take the final responsibility for the competence of their notified bodies with respect to the other Member States and the EU institutions.” [^7]: Blue Guide 2022, Section 5.3.1. Notifying Authority는 적합성 평가 활동이나 상업적 컨설팅을 수행해서는 안 됨. [^8]: Blue Guide 2022, Section 5.3.3. NANDO(New Approach Notified and Designated Organisations) — EU 집행위원회 운영 전자 통보·공개 시스템. [^9]: Blue Guide 2022, Section 5.3.3. NB 식별번호는 NANDO 시스템이 자동 생성하며, 순차적이고 재사용되지 않음. [^10]: Blue Guide 2022, Section 5.3.2.3 및 Section 5.3.4. 인정 철회 시 NB 지위 상실(de-notification). [^11]: Regulation (EC) No 765/2008. EA(European co-operation for Accreditation)의 동료 평가(Peer Evaluation) 체계. [^12]: Blue Guide 2022, Section 6. “In the EU, accreditation is a non-commercial and non-competitive public activity which is accountable to both national and European authorities.”